그렇게 동생이 갔다는 사실에 살짝 우울했다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길거리를 돌아다녔다.
오늘은 낮에 헤밍웨이가 낚시를 했었다는 꼬이마르(Cojimar)라는 곳에 갈 계획을 했다.
아직 시간이 남아있어 주변을 더 둘러보기로 했다.
왜냐하면 오늘은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숙소의 마지막 날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아바나를 떠나는 것은 아니다. 아바나는 무지 크기 때문에 아바나 센트로 지역이 아닌 아바나지만 중심지에서 좀 멀리 떨어져서 중산층이 사는 동네에 가서 또 2박 3일 정도 지내다가 산티아고 데 쿠바로 가려고 생각했다.
잘 구워진 한국인 가이드님도 아바나에 6일씩 있는 건은 길지 않나 싶으시다곤 했지만, 관광 보다는 현지인들과 동화되는 여행을 계획하고 온 것이라 딱히 문제는 없었다.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지.
잘 알지도 못하는 스페인어를 하며, 사람들에게 "꼬이마르, 까미난도?" 외쳤더니, 안된다고 한다.
걸어가는 것은 불가능.
버스를 타라고 알려주었다. 친절한 쿠바 사람들이 저 버스를 타면 된다고 해서 버스도 탔다.
그런데, 또 어디에서 내려야 하는지 모르니까, 버스 안에서 사람들에게 물어서 꼬이마르 가까운데서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제 maps.me 를 보고 무작정 걷는 것이다.
꼬이마르 가는 길.... (사진 매우 많음)
더운 나라임에도 빨간색 페인트로 칠한 집과 빨간색 차, 빨간색 옷을 입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
빨간색을 좋아하는 정열의 나라다.
이 동네를 지나면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있었는데,
어떤 여자가 나 보고
"Oye, Chino~ Bienvenido(이봐, 중국인, 어서와)" 라고 했다.
나는 코미꼬에서 배운 스페인어를 썼다. (매우 잘배웠다.)
"No soy chino, soy coreano!(난 중국인이 아니야, 한국인이야!)"
라고 해주었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바로.
"tu Hablas muy bien español!(너 스페인어 잘한다!)" 라고 대답해주더라. 우히히히.... 역시 코미꼬.
그리고, 내 갈 길 갔다.
관광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길거리에 무턱대고 열심히 걷고 있는 동양인은 나뿐이었다.
미친놈이 분명하다. 어떤 위험이 도사리는지 모르는 곳을 무턱대고 카메라를 메고 걷고 있는 혼자인 동양인이라니!
하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죽기를 각오하면 두려울 것이 없다."
쿠바가 위험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겁 없이 돌아다니는 걸 선호하고, '나의 운명이 거기까지라면....' 라는 약간은 낙관적인, 어떻게 보면 부정적인 그런 생각을 갖고 살고 있다. 그러다보니,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고, 겁도 많이 줄었다. "일단 하고 보자" 와 함께 지금의 나를 만든 어떤 기둥 같은게 아닐까 한다.
하염없이 길을 걷는다.
게임 GTA 바이스시티에서 볼 수 있는 야자수와 아파트의 모습
마치 플로리다를 방불케 하는... (플로리다 가본 적 없음)
사람이 살고 있는 낡은 아파트
파 크라이 6 라는 게임을 하면 자주 볼 수 있는 아파트이다.
파 크라이 6는 게임의 배경이 쿠바와 비슷하다길래 해보았다. 평점이나 평단이 어떻건 간에,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풍경이라 좋아한다.
계속 걸었다.
이 길을 지날때쯤...
난 분명 maps.me 를 제대로 보고 길을 가고 있었지만, 괜히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어졌다.
그래서,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donde esta cojimar?(돈데 에스타 꼬이마르?)" 라고 괜히 말을 걸었고, 제대로 가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냥 말을 거는 건 언어를 배우는 데 제일 좋은 방법이다. 미친 방법이기도 하고.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그냥 아는 단어만 골라서 해석해서 다시 물어보거나 고맙다고 인사하고 지나가면 된다.
어차피 난 제대로 가고 있으니까.
지나가다보니, 길가에 나무가 쓰러져 있었고, 사람들이 나와서 보고 있었다.
저 넘어에 끝이 보인다. 바다다. 꼬이마르에 거의 도착했다.
두근 두근.
바다와 빨간 티코 비슷한거!!
드디어 걸어서 꼬이마르까지 왔다!!!
꼬이마르의 바다
꼬이마르는 아주 작은 동네다. 그리고, 생각 보다 인기가 없었다.
외국인 관광객은 찾아볼 수 없었고, 나 뿐이었다.
내리쬐는 햇볕을 다이렉트로 맞으며, 한참을 걸어온 끝에 꼬이마르에 도착했는데, 아바나 처럼 부산하지도, 북적거리지도 않고, 한적하다. 현지인들도 많이 보이지 않는다.
아바나가 북적북적 사람, 사람, 사람이라면, 꼬이마르는 한적한 어촌 마을이다.
꼬이마르에도 까사가 있다.
하지만 주변에 마땅히 관광 할만한 곳이 없어서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다.
까사는 사람이 있을까 싶고..
여기도 꼬이마르에 있는 까사다.
사진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사람이 별로 없다.
정말 한적하고, 시원한 바닷바람이 부는 한적한 동네다.
꼬이마르에 있는 작은 요새
이 요새 넘어로 탁 트인 바다가 있고, 오른쪽에는 꼬이마르 부두가 있다.
날도 새파랗고, 페인트도 새파랗다.
관광객이 없는 꼬이마르, 낡고 관리가 되지 않은 헤밍웨이 동상 앞에서 길거리 악단을 만났다.
팁을 요구하는 줄 알았는데, 반가운 외지인이 왔다고 그냥 음악만 들려주었고, 기타를 조금 배운 나는 기타도 쳐주고,
내가 좋아하는 Johanes Linstead 의 Cafe Tropical 도 들려주고, 그에 맞춰 기타도 연주해 주었다.
Johannes Linstead - Cafe Tropical
이 음악은 쿠바 어디에서든 들으면서 다니면 신난다.
꼬이마르 선착장...?
작은 어선이 정박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선착장이다.
좀 좋지 않은 냄새가 났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한적하고, 주변에 사람도 없고, 나 혼자서 이곳에서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사실 꼬이마르는 둘러볼만한 관광 명소가 별로 없다.
동네 자체가 작기도 하고, 헤밍웨이가 살았을 때에는 어선을 타고 낚시를 할 수 있었겠지만, 나는 낚시를 하지도 못하고, 관리도 그다지 잘 되어있지 않았다. 하지만, 쿠바는 어디를 가나 관리가 잘되어 있지 않다. 그게 매력이다.
한동안 바닷바람과 바닷소리를 들으며 있다가 다시 걸었다.
아바나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야되기 때문이지.
또 다시 시작된 걷기.
내가 이렇게 잘 걸어다닐 수 있다는 것을 새삼깨닫는다. 서울에서는 계단과 에스컬레이터가 있다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엘리베이터를 타는게 먼저였는데, 그런 시설도 많지 않고, 딱 60년~80년 스타일로 참 좋았다. 구 공산권 도시 스타일.
돌아가는 길에 자동차가 고장났는지, 점검하고 있는지 모르는 가족들을 만났다. 옆에 아이들도 함께
이런 바쁘지 않은 삶을 어느정도 깨달아가고 있었다.
덥다 덥다 하면서도 하염없이 걷기만 해도 행복할 수 있는 곳.
이제 버스를 타는 곳 근처까지 왔는데 말이 있다. 말이 많이 말랐다.
빠나메리카노 경기장 근처인데 대부분 저렇게 허허벌판이 펼쳐진 곳이 많았다.
버스 타고 금방 오는 곳임에도 발전되지 않았고, 사람도 많지 않다.
여기서 다시 왔던 버스 그대로 다시 타고 아바나로 돌아간다.
쿠바에 온지 3일차가 되는 날, 현지인들이 타는 버스를 탔다.
점점 쿠바 여행에 자신감이 붙어가고 있는 것이다.